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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도 버티는 반도체? 방사선 내성 소재의 비밀

📑 목차

    위성, 화성 탐사선, 우주 망원경, 달 착륙선처럼 지구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장비들은 보통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 아무도 손대지 않아도 완벽하게 작동해야 한다. 지구에서는 작은 결함이 생기면 금방 고칠 수 있지만, 우주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한 번 고장이 나면 전체 임무가 종료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주 장비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반도체가 사용된다. 바로 우주 방사선을 견디는 ‘방사선 내성 반도체’다.

    이 글에서는 우주 방사선이 반도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방사선 내성 반도체 소재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막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소재가 사용되는지까지 하나씩 풀어본다. 기술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되, 깊이 있는 정보까지 담아 우주 기술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

    우주에서 고에너지 방사선 입자가 반도체 칩을 때리는 모습
    우주에서 고에너지 방사선 입자가 반도체 칩을 때리는 모습

    1. 우주에서는 왜 반도체가 쉽게 고장날까?

    지구는 대기층과 자기장이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어서 강한 우주 방사선이 지상까지 거의 도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 공간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주선이나 위성은 아래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태양풍 방사선(Solar Particle Events)

    태양 플레어가 폭발하면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입자들이 장비를 때린다. 매우 불규칙적이어서 예측도 힘들다.

    우주선(Cosmic Rays)

    우주 곳곳에서 날아오는 고속 입자들. 전하를 띠고 있어서 반도체 내부를 통과할 때 전자를 밀어내거나 충돌을 일으킨다.

    지구 자기장에 갇힌 방사선(Van Allen Belt)

    지구 궤도 위성 대부분이 일정 수준의 방사선대를 지나가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는 전자 이동에 기반한 정교한 장치이기 때문에, 이런 방사선이 조금만 쏟아져도 내부 회로가 오작동하기 쉽다.

    2. 방사선이 반도체에 일으키는 대표적인 문제

    방사선이 반도체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단일 이벤트 업셋(SEE, Single Event Upset)

    단 하나의 고에너지 입자가 반도체 내부에서 충돌해 비트가 ‘0 → 1’ 혹은 ‘1 → 0’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예: 위성 카메라가 갑자기 꺼졌다 켜지는 문제

    (2) 누적 방사선 손상(TID, Total Ionizing Dose)

    장기간 방사선에 노출되면서 반도체가 조금씩 열화된다. 전류 누설이 증가하거나 회로 신뢰성이 떨어진다.

    (3) 단일 이벤트 소손(SEL, Single Event Latch-up)

    방사선 충돌로 인해 내부에 큰 전류가 발생하고 그대로 고정되면서 반도체가 완전히 파괴되는 심각한 문제다.

    이처럼 우주 환경은 단순히 ‘조금 나쁜 환경’이 아니라 반도체가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극한 조건이다.
    그래서 우주용 반도체는 지상에서 쓰는 반도체와 완전히 다른 소재·설계 체계가 필요하다.

    3. 방사선 내성 반도체 소재는 어떻게 반응을 막을까?

    방사선을 견디는 방법은 크게 소재 자체를 바꾸거나, 회로 구조를 바꾸거나, 둘 모두를 활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① 밴드갭이 넓은 소재 사용 (와이드밴드갭 재료)

    방사선이 반도체를 통과하면 내부 전자를 들뜨게 하거나 결함을 만든다.
    그러나 밴드갭이 넓은 소재는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대표 소재

    • SiC (실리콘카바이드)
    • GaN (질화갈륨)
    • GaAs (비소화갈륨)
    • AlGaN 등

    이들 소재는
    전자 이동이 안정적이고
    방사선 충돌에도 구조 변형이 적다
    고온·고전압에서도 성능이 잘 유지된다.

    즉, 구조적으로 ‘튼튼한 반도체’다.

    4. 우주 장비에서 많이 쓰이는 방사선 내성 반도체 소재

    ① GaN(질화갈륨)

    • 우주용 전력 반도체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
    • 높은 전압·고온에서도 견고
    • 방사선 내성 수치가 실리콘보다 훨씬 높음
    • 위성 전력변환장치, 레이더, 우주선 추진 모듈에 핵심 적용

    ② SiC(실리콘카바이드)

    • 고출력·고효율이 필요한 기기에서 필수
    • 방사선 누적에도 구조 변형이 작아 오랜 수명 보장
    • 위성 통신, 궤도 유지 장비, 우주선 엔진 제어 장치 등에서 활용

    ③ GaAs(비소화갈륨)

    • 태양전지 패널 및 전력 증폭기에 널리 사용
    • 우주 방사선에 매우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고성능 장비에 채택

    ④ SOI(Silicon On Insulator) 기술 기반 칩

    • 실리콘-절연층-실리콘의 3층 구조
    • 방사선이 회로에 바로 영향을 주지 못하게 차단
    • NASA·ESA가 오래전부터 사용하는 대표적 우주용 반도체 설계

    5. 소재 외에도 중요한 ‘설계 기술’

    우주용 반도체는 소재만 좋은 걸 쓴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우주 방사선 내성 설계’라는 전용 기술이 반드시 함께 적용된다.

    중복 회로(TR, Triple Modular Redundancy)

    핵심 회로를 3개 넣어 하나가 고장 나도 나머지 둘이 정상 신호를 유지하는 방식.

    딥 서브미크론 공정

    절연막이 두텁고 간격이 좁아 방사선 충돌 시 영향을 줄인다.

    SEU 방지 코딩·회로 구조 보강

    메모리 비트가 뒤집히면 자동으로 복구하는 ECC(Error Correction Code) 기술을 사용한다.

    6. 방사선 내성 반도체가 실제로 쓰이는 곳

    ① 통신·영상 중계 위성

    24시간 내내 강한 방사선대(Van Allen Belt)를 지나는 대표 장비.
    반도체가 고장 나면 수백억 규모의 위성이 그대로 폐기될 수 있다.

    ② 달·화성 탐사선

    심우주 영역으로 갈수록 방사선 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장기간 임무를 수행하는 화성 탐사선에는 방사선 내성 소재가 필수다.

    ③ 우주망원경(허블, 제임스웹 등)

    정밀한 관측 장비이기 때문에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④ 우주정거장(ISS) 시스템 제어장치

    전력관리, 통신, 안정화 시스템에 모두 방사선 내성 반도체가 포함된다.

    7. 우주 시장에서 방사선 내성 반도체 소재가 주목받는 이유

    최근 우주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방사선 내성 반도체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아래와 같은 흐름이 이를 더욱 가속화한다.

    민간 우주 기업의 증가(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등)

    저궤도 위성이 수천 개 단위로 늘어나면서 내성 반도체의 안정성은 필수 조건이 되었다.

    우주 데이터센터 시대의 시작

    추진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들은 장기간 오류 없는 컴퓨팅을 요구한다.
    방사선에 약한 지상형 반도체는 적용이 어려운 구조다.

    달 탐사·화성 탐사 미션 확대

    지구보다 훨씬 강한 방사선 환경에서 정상 작동해야 하므로, 소재 기술이 미션의 성패를 좌우한다.

    8. 앞으로 주목할 차세대 방사선 내성 소재 기술

    ① 다층 난원자 구조 반도체(Multi-layered Disordered Materials)

    방사선 충돌 에너지를 여러 층으로 분산시켜 손상을 최소화한다.

    ② 아모퍼스 반도체 기반 우주 재료

    결정 구조가 규칙적이지 않아 충돌 시 국부적 파괴가 작게 나타난다.

    ③ 질화알루미늄(AlN)·질화붕소(BN) 기반 소재

    초고온, 초고전압에서도 안정적이고 방사선 흡수 능력이 강해 미래 우주용 파워 반도체 후보로 주목된다.

    9. 결론: 우주 기술의 핵심은 ‘버티는 반도체’에 있다

    우주 산업은 더 이상 국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민간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위성, 탐사선, 우주 인터넷, 심우주 탐험 등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이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방사선에 흔들리지 않는 반도체가 있다.

    • 태양폭풍에도 꺼지지 않는 전력 시스템
    • 빛보다 빠른 우주선 통신을 구현하는 증폭기
    • 화성에서도 오차 없이 작동하는 센서

    이런 미래 기술은 ‘우주에서도 버티는 반도체 소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향후 우주 산업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면, 방사선 내성 반도체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우주 미션 전체를 결정하는 전략 기술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